글
책 2011/10/23 00:17『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김연수의 소설은 불필요하게 어렵다고 생각한다.
1.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다음에 생략된 말은 무엇일까. 책속의 이야기처럼 우주는 무한하고, 거기엔 필연적인 이유가 있으니 지금 너를 지켜보고 같이 아파하는 누군가가 있다, 그러니 힘들어하지 말라는 뜻일까. 그건 너무 낙천적인 이야기고, 내 생각에 생략된 진짜 말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아무 상관없다, 이 세계는, 인 것 같다.
2.
『검은꽃』을 읽은 후, 주어진 세계에 던져진 후 아무리 꿈을 꾸고 노력하고 이리저리 발버둥을 쳐봐도 결국엔 패배할 수 밖에 없게 설계된 가혹한 운명이, 개인은 결국 세계 앞에 한없이 무력하고,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이, 슬펐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읽은 후, 마찬가지로 슬프고 한스럽고 무력감을 느낀다. 존재(생존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자체가 우연일 수 밖에 없는 세계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확신하지 못한 채 살고 죽는 무력한 개인의 인생. 어찌 슬프고, 한스럽고, 무력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3.
소설이 배경으로 삼은 건 91년 분신정국, 2차대전의 전장, 홀로코스트 가스실, 80년 광주, 끔찍한 고문실 등 생존 자체가 우연에 의해 결정되었던 시대다. 개인의 이야기를 모두 소멸시켜버리는 혁명의 시대, 폭력의 시대를 비극으로 살아야 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 불운의 시대와 내가 지금 몸담은 2011년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생각하게 된다. 여전히 개인의 이야기는 거대한 이야기 앞에 다 녹아버리지 않는가. 적어도 나는, “거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삼은 집합적 주어가 폐기된 자리”에 서 있지 않는 것 같다. 입체누드사진 한 장의 의미가 곱씹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4.
“…… 거기에 희망이 무엇이라 나와 있었지? <투란도트>에 말이야.”
베르크 씨의 말에 정교수는 답했다.
“밤이면 인간의 마음속에서 날개를 폈다가 해가 뜨면 사라지는 환상. 매일 밤 태어났다가 매일 아침 소멸하는 것.”
“결국 만지면 부서지는 나비의 날개 같은 것이지. 현실이 잔혹할 때, 희망이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장난감 같은 거야…….”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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