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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12/05/17 15:28낭만적 사랑에 대하여
정이현과 보통, 그 둘이 같이 소설을 냈다는 기획만으로 일단 흥분.
책을 받자마자 읽었다. 두 번 읽었다.
* 첫인상
보통의 소설 「한 남자」는 소설이라기보다 에세이. 주인공 ‘벤’의 이야기보다 보통 선생의 강의에 무게가 쏠려 있다. 소설 속 인물과 사건은 철학 설파의 도구. 하긴 대부분의 소설들이 그렇지. 벤의 결말이 궁금하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 자체의 매력은 떨어진다. 그래도 단숨에 읽어 재낄만큼 맛있는 책이긴 하다.
정이현의 소설 「연인들」은 오늘 한국사회에 2-30대에겐 너무 익숙한 이야기. 이 익숙하고 평범한 것을 ‘바닐라향처럼 달콤하게, 때로는 가슴 아프도록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게 정이현의 힘. 「연인들」에 정이현 소설의 핵심 키워드인 ‘파국과 봉합’은 없지만, 그래서 충격이나 환기 같은 것은 없지만 또 다른 키워드인 ‘씁쓸함’은 여전히 짙게 배어있다.
** 살펴보기 하나―<사랑과 전쟁>의 고상한 버전
알랭 드 보통의 「한 남자」는 낭만적 사랑의 불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다. 이야기의 시작을 보통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서 찾는다. 과학의 발전, 산업혁명과 정치혁명의 결과로 만들어진 부르주아적 세계관은 '인류는 세계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진보는 시간의 문제일 뿐, 내일은 반드시 오늘보다 전진한다‘는 낙관적 믿음이었다. 개인의 자유와 능력에 대한 무한한 신뢰―이 부르주아의 낙관적 믿음은 남녀간의 사랑과 결혼의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과거에는 독립적 요소로 보였던 로멘스/에로스/가족, 이 세 가지 이상의 동시적 추구가 새로운 이상으로 성립된 것이다. 과거의 정략결혼이나 트루바두르, 리베르탱식의 불안/불완전한 사랑은 부정된다. 이제부터 우리는 낭만적 사랑과 성애, 그리고 가족이라는 절실한 요구를 단 한 사람, 배우자의 도움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 이 자신만만한 부르주아의 야심찬 이상! 문제는, 이미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 세 가지 이상이 서로 모순적이며, 따라서 동시에 성취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되시겠다.
1912년에 발표한 「애정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절하현상의 보편적 경향에 관하여」라는 거북하면서도 아름다운 제목의 논문에서 프로이트는 그토록 많은 환자들을 괴롭히는 딜레마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그들은 사랑하면 정욕이 사라졌고, 정욕을 느끼면 사랑할 수 없었다.” (pp.106-107)
지금까지 보아온 대로, 현대의 결혼은 섹스, 사랑, 가족이라는 세 가지 욕구를 조화시킬 수 있는 무대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각각 다른 것들에 위협이 되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와 섹스하는 능력을 위태롭게 한다. 특별히 사랑하진 않지만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누군가와 섹스하는 것은 사랑하지만 더 이상 흥분되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를 위태롭게 한다. 아이를 갖는 것은 사랑과 섹스 모두를 위태롭게 한다. 그리고 사랑과 섹스에만 몰두하는 것은 다음 세대의 육체와 정신의 안녕을 위태롭게 한다. (p.139)
이처럼 부르주의의 낙관은 과학/정치/경제의 영역(상대성이론/세계대전과 파시즘/대공황)에 이어 사랑과 결혼에 있어서도 무너진다. 해결책은 있는가. 아직 낭만을 믿는 소설 속 주인공 벤은 그 해결을 찾지 못해 고뇌한다. 불륜을 저지르고, 부부를 위한 카운슬링도 꿈꿔 보지만 낭만적 사랑의 세 영역 중 어느 하나를 해결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다른 두 가지를 파괴시킨다는 사실을 그는 안다. 애초에 세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숙제다. 아니 불가능하지 않지만 “상황이 우리에게 몹시 불리”한 일이다. 고뇌의 끝, 소설의 마지막에서 주인공 벤이 내리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진정한 용기는 불안에 시달린다고 쉽사리 파괴되지 않는 것이다. 상대의 약한 모습에 좌절하여 상처주지 않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자신과 똑같이 상처받은 사람들로 보는 것이다. 자신과 같은 죄에 오염되었다고 아이를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는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를 그럭저럭 계속해나가는 단순한 일. 이것이 진짜 용기이며 영웅주의다. (p.165)
마흔살 생일에 헬리콥터 안에서의 짧은 순간을 경험한 후, 벤은 이 불가능하고 불안한 ‘사랑’에 대해 앞으로도 끊임없이 실망하고 분노하고 좌절할 것임을 알지만 훌륭한 남편, 아빠, 가장이 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을 결심한다. 이 마지막 장의 제목은 당연하게도 ‘평범한 삶을 위한 용기’다.
*** 살펴보기 둘―<브로콜리 너마저>+<내 깡패같은 애인>
정이현의 「연인들」은 지금 한국사회의 2-30대 연인들의 모습을 정확하게 포착한 소설이다. 이름처럼 평범한 소설의 주인공 민아와 준호는 평범하게 만나 평범하게 사랑하다 평범하게 헤어진다. 어디에도 ‘이런 소설 같은 일이 있다니’ 할 만한 장면은 없다. 요즘 TV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태생의 비밀도 기구한 운명의 장난도 없다. 소설 속 모든 일이, 그 전개가, 합당하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그 합당하다 느끼는 마음만큼 소설은 비극처럼 느껴진다.
출판사의 주문과 달리 보통의 「한 남자」를 먼저 읽고 나서 「연인들」을 읽다보면 소설 속 벤과 보통의 고민이 되게 배부른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낭만적 사랑은 가능한가’ 하는 질문은 21세기 한국사회에서 그야말로 ‘낭만적인’ 것이다. 연애의 성공적 결말이 여전히 결혼밖에 없는 한국사회에서 언제부터인가 결혼은 적당한 시기에 찾아오는 인생의 당연한 과정이 아니라 상당한 능력을 갖추어야 성취할 수 있는 목표가 되어버렸다. 3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세대라는 삭막한 신조어가 낯설지 않게 쓰이는 요즘, 취업난과 스펙경쟁의 각박함 속에 젊은 날의 연애 역시 사치처럼 여겨진다. 따라서「연인들」의 주인공들과 같은 우리세대에게는 ‘낭만적 사랑은 가능한가’라는 질문 대신 삶에 ‘낭만’이란 게 있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더 어울린다. 오늘 우리 주변에서 ‘낭만’이란 멋진 말이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자리는 그리 넓지 않으니 말이다.
물론 「연인들」에서 민아와 준호가 결별하는 이유가 돈 때문은 아니다. 문제는 이해다. 그들은 어느 정도 서로를 이해하려 했기에 연애를 시작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었지만 그 이해가 완벽할 수는 없었기에 헤어진다. 보통이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누군가를 전적으로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그들은 이별을 선택한다. (「한 남자」에 담긴 메시지는 세대를 가리지 않고 현대 부르주아 사회 안에서 보편적이다.) 하지만 이런 근본적 난제 말고도 책을 읽는 우리는 민아와 준호의 연애 근저에서 앞서 말한 ‘낭만적’일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모습들을 발견한다. 그들은 왜 커피전문점과 모텔방을 전전하는가. 민아에게 할머니, 준호에게 아버지는 단지 가족이 남긴 어둠의 그늘일 뿐인가. 왜 준호는 결혼을 선뜻 결심하지 못하는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다는 민아를 왜 준호는 이해할 수 없는가. 민아는 왜 준호에게 “만약 이러다 임신하면 어떻게 하지?”란 질문을 했을까.
‘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부모’도 실망시키지 않는 삶. 세상 어딘가에는 그런 삶을 사는 여자도 있겠지. (p.157)
소설의 서문 작가의 말에서 정이현은 이렇게 말한다. “2012년 봄. 사랑을 위한 문장부호로 나는 느낌표 대신 말줄임표를 고르겠다.” 소설의 결말부에서 정이현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다른 곳에서 발생해 잠시 겹쳐졌던 두 개의 포물선은 이제 다시 제각각의 완만한 곡선을 그려갈 것이다. 그렇다고, 허공에서 포개졌던 한순간이 기적이 아니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느낌표 대신 말줄임표/평행선이 아닌 포물선의 접점. 이게 어쩌면 오늘 우리들이 사랑을 대하는 방식이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 남는 것
「한 남자」나 「연인들」이나 애초에 기대했던 ‘기깔’나게 참신한 무언가는 없다(『사랑의 기초』에서 참신한 것이라곤 정이현과 보통이 함께 했다는 기획뿐이다). 허나 동시대인들이 평소 살면서 어렴풋이 느끼는 걸 정제시켜 이야기로 다듬은 후 독자들의 눈앞에 펼쳐놓은 것이 바로 소설 아닌가. 몇 년째 솔로로 살아가고 있는 사랑의 소외계층/피해의식의 엑기스인 나는 이 두 소설을 통해 뭔가 위로받은 심정이다.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죽음과 불가능한 희망을 잊기 위해 일이 필요하다고 한 보통은 「한 남자」에서 “자본주의의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우리는 낭만적 사랑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소설을 다 읽은 지금 이 순간, 설령 낭만적 사랑이 서로 모순적이고 불가능한 것이라 할지라도 불완전하나마 도피처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내게는 중요하게 다가온다.
「연인들」의 먹먹한 결말은 그것대로 가슴에 남지만, 그보다 두 포물선의 접점이 남기는 아름다운 흔적이 더 넓게 퍼져 마음을 적신다. 읽는 내내 나의 포물선과 한때 접촉했던 이들의 포물선에 대해, 그 접촉의 순간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했대도 충분히 의미 있는 비행이었다는 것도.” 씁쓸한 맛도 있지만 읽는 사람을 잔인하게 몰아붙이지 않기에 「연인들」은 지금까지 정이현의 이름으로 나온 모든 소설 중에서 제일 다정한 소설로 생각된다. 아마,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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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12/05/15 16:47진짜 자서전을 기다린다
박근혜 자서전을 내 돈 내고 사서 읽었다. 프로들이 몇 군데 손봐준 데는 있다 하더라도 우려(?)와 달리 대필은 확실히 아닌 듯하다. 내가 박근혜란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로 지금 책을 쓰더라고 이것보단 잘 쓰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
일단 재미가 너무 없다. 적지 않은 시간을 굵직굵직한 사건의 목격자이자 참관인으로 살아온 사람이었음에도 그녀의 술회는 따분하고 지루하다. 보통 이런 자서전을 읽을 때 기대하는 감춰진 진실이나 사건의 내막 같은 건 없다. 각 사건이 그녀에게 미친 영향 역시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들이다. 결국 그녀의 삶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이 책은 읽으나 마나한 자료로 된다. 위키피디아만큼의 가치도 없다.
**
다음으로, 당연한 이야기지만, 너무 정치적이다. 책이 출판된 시점이 2007 대선 경선 즈음이라 자신이 얼마나 준비된 대권후보이고 유능한 정치인인지 알리는데 책의 절반 이상이 할애되어 있다. 소제목들만 봐도, 북한에서 날아든 초청장(통일)/여자는 못 들어갑니다(여성)/나의 미래 파트너, 대한민국 젊은이들(청년) 등 자서전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정책홍보물로 봐야할 구성이다. 정작 관심 있는 부분들, 가령 80년대 그녀는 생계를 어떻게 유지했는지(정수장학회), 로맨스는 있었는지, 유신시대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는 없다. '아버지는 군인인 동시에 로맨티스트, 어머니는 엄하지만 따뜻한 애국자, 그 밑에서 좋은 점만 배운 나는 정치를 잘 할 수밖에 없는 인간'―, 이건 뭐 대충 때려 써 논 자기소개서도 아니고, 솔직하다 안 하다를 넘어서 정치인 박근혜를 긍정적으로 봐주길 바라는 속셈을 너무 뻔하게 드러내놓는 게 아닌가.
게다가 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에 있어서 그녀의 생각은 총 60여 장으로 이루어진 이 자서전에서 딱 한 장에 등장한다. 여기서 그녀는 ‘인권문제가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소홀시 된 부분이고 그 때문에 피해를 입은 분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식의 한두 문단으로 평과와 반성을 퉁친다. 그리고 진짜 ‘악랄하게도’, 같은 장에서 김대중 납치사건을 정인숙 사건과 엮어서 동급의 스캔들로 격하시킨 후(딱 이 두 가지 구체적 사례만 언급한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다수의 비판을 아버지를 ‘음해’하는 ‘배신’의 시도로 간주한다. 박근혜를, 새누리당을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서,
이건 좀 너무하잖아.
***
애초에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재밌는 이야기가 있을 거 같아서 골랐는데 정가의 35%를 할인받아서 샀지만 그 돈도 아까운 책이다. 이것과 비교해보면 홉스봄의 『미완의 시대』는 얼마나 훌륭한 자서전인가. 이 책에서 그는 콤플렉스 덩어리였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어떻게 공산주의자가 되었는지를, 20차 소련공산당 회의 이후 깊어진 회의와 여전한 미련을, 지금까지도 볼세비키식 혁명을 기대하는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는다. 심지어 유부녀와의 불륜처럼 부끄러운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런 게 자서전이지.
안타깝게도 '박근혜 자서전'이란 명칭을 부제로 건 이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는 얼마나 팔렸던 지간에 망작이다. 무엇보다 박근혜가 이 자서전의 내용을 훨씬 능가하는 진짜진짜진짜 매력적 인물이기에 그렇다. DJ를 지지했던 우리 어머니도 좋아하는 정치인, 한반도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공주’, 처연/숙명/눈물의 페르소나. 여전히 그녀의 삶 중 커다란 영역은 은밀하게 감춰져 있다. 그걸 듣고 싶다. 박근혜의 입으로 말이다. 요 책은 그냥 정치홍보물로 생각하고 진짜 그녀의 자서전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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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12/05/10 14:09서른 즈음에 읽는 소설
허삼관 매혈기였나, 김영하가 자신의 팟캐스트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소설가/작가는 두 권 이상의 작품을 써내는 사람이다. 누구나 소설 한 권을 쓸 수 있을 만큼의 이야기는 가지고 있다”고. 누구나, 소설 한 권, 이야기. 소설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이야기이기에 개연성을 가지고, 독자의 공감을 얻는다. 반대로 소설은 누구에게나 흔치 않은 이야기이기에 시간을 들여 읽을 만한 이야기가 되고 , 독자의 흥미를 끈다. 하여 누구나 소설 한 권을 쓸 수 있을 만큼의 이야기는 가지고 있다는 이 말은, 어떤 일탈적 경험의 순간이나 기형적 사건사고 없이 그저 평범하고 조용한 삶을 살아온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말과 같으며, 어쩌면 그 일탈과 기형의 경험/사건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타인의 삶과 구별해주는 것일 수 있다는 말도 된다.
* * *
누구에게든 하나쯤 있기 마련인 ‘지워지지 않는 어떤 순간’을 회상하고,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그 기억에 아파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들을 편안한 언어로 그려냈다. 앤드류 포터는 우리 주위에 흔히 있을 법한 친근한 인물들을 통해 상처나 아픔으로 남은 기억이라고 해도 그 역시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소중한 과거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비교적 짧은 10편의 소설들로 이루어진 단편소설집이다. 읽기 쉽고, 각각의 내용도 간단하다. 작가 한명에 의한 소설집이기에, 그리고 이것이 작가의 처녀작과 같기에 수록된 소설들의 스타일은 통일적이고 메시지는 반복된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에서 이 작품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아무리 평범하고 무탈한 삶을 살아온 이라고 해도, 고개를 돌리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평범한 삶 속에 감춰진 상처들을 차분하게 감싸는 앤드류 포터의 단편들을 읽다 보면 언제 생겼는지도 알 수 없던 그 해묵은 상처들이 하나씩 치유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책에 수록된 10편의 단편 중 7편이 십 수 년 전 과거의 사건을 추억하는 형태로 서술된다. 어처구니없는 친구의 죽음을(「구멍」), 아버지와 함께 목격한 어머니의 외도를(「코요테」), 아버지뻘 되는 교수와의 로맨틱했던 모임을(「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망나니 형의 범죄와 그에 대한 자신의 방관을(「강개의 개」), 아미시공동체 소녀와의 짧았던 로맨스를(「외출」), 어머니와 이웃 아주머니간의 이상한 불륜을(「코네티컷」) 소설에서 주인공 나는 복기한다.
위 소설들에서 인상적인 점 하나. 작중화자의 현재가 상대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보통 이런 식의 소설은 과거의 경험/사건이 현재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그 결과 현재의 자신은 과거의 영향으로 인해 이러저러한 선택을 하게 된다는 식이다.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사건이 병렬적으로 배치되고, 과거의 극복 혹은 잔존이 소설의 주기제인 경우도 많다. 헌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 담긴 소설들은 그저 과거의 경험 혹은 사건에 대해 복기하는 것에 충실하다. 현재의 상태나 과거의 경험이 지금의 ‘나’에게 미친 영향들은 상대적으로(때론 절대적으로) 생략/삭제되어 있다. 그들은 그저 과거의 사건을, 상처를, 자신을, 꽤 시간이 지난 ‘나’의 상태에서 생생히 그리고 객관적으로 되살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것이 주는 효과는 다음과 같은데, 과거를 되살피는 작중화자처럼 독자들은 자신의 삶 속 그늘을 추적한다. 소설 속 사건과 상처에 비추어 비록 형태나 양상은 다를 지라도 자신의 과거에 서늘하게 남아있는 기억을 또렷이 되살리는 시도를 한다. 그리고 지금의 나의 상태에서 객관적으로 마주해 본다. 소설 속 내용 자체가 주는 여운이나 감동보다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을 매개로 열리는 독자 ‘나’의 이야기. 하여 이 소설은 매우 짧은 분량이지만 이로 만들어지는 이야기는 다른 것들보다 크고 깊다.
인상적인 점 두 번째는 작중화자의 연령. 7편의 단편에서 십여 년 전 과거를 회상하는 주인공들의 현재 나이는 모두 이십대 중후반에서 삼십대 초반 정도다. 보통 이런 회고형(?) 소설에 화자로 등장하는 나이치고 어린 편이다. 서른 즈음. 가는데 순서는 없지만 아직 생의 절반도 안 된 나이. 그러함에도 ‘고개를 돌리고 싶었던 순간’은 있고, ‘감춰진 상처’는 존재한다. 주로 가족들과 관계되어 있는, 그리고 어떠한 결정의 권한도 없는 유년기에 겪은 이런 사건과 상처는 서른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것은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까. 답은 이 책을 읽는 ‘서른 살’ 독자들의 몫이다. 나의 경우를 말하자면……. 아니, 이건 그렇게 쉽게 이야기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책 소개에서는 이 문제―사건/상처의 의미와 치유에 대해 ‘소중한 과거의 하나’라고, 독자들이 책을 통해 ‘해묵은 상처들이 하나씩 치유되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 앤드루 포터라는 작가는 답을 피하고 독자들에게 맡겨 버리는 것 같다. 소설 속에서 그 기억들은 정말 소중한 과거의 하나로 묘사되는가. 그리고 그 해묵은 상처들은 정말 하나씩 신비하게 치유되는가. 나름 꼼꼼히 읽었지만 나는 그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작가는 상처의 의미와 치유의 방법을 이 소설을 매개로 독자들이 각자의 경험을 반추함으로써 스스로 살펴볼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통로를 제시하였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덧붙여, 소설의 작가 앤드루 포터는 1972년생이다. 이 작품들을 쓸 때 나이는 아마 소설 속 화자의 나이와 거의 일치했을 것이다. 화자와 작가를 동일시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지만 그래도 이런 류의 소설을 읽을 때 좀 더 몰입하게 되는 기제가 되기도 한다. 독자의 나이가 이 ‘서른 즈음’에 있다면 아마 더 그럴 것이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나 같은 서른을 위한 소설이다. 좀 더 나이가 많거나 나이가 적다면 소설이 주는 파장의 진폭이 보다 작을 수 있다.
* * *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누구나 소설 한 권을 쓸 수 있을 만큼의 이야기는 가지고 있다는 말에 대해. 나의 경우, 만약 기회가 되어 장편소설 한 권을 쓰게 된다면 나는 믿음을 잃은 신부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쓰고 싶다. 누구보다 불타올랐던 한 신부의 종교적 열정이 어느 순간, 어떤 사건을 통해 순식간에 증발해버리는, 하지만 끝내 그는 성당을 떠나지 못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신 앞에, 동료 목회자들 앞에, 자신을 따르는 신도들 앞에, 성당 외의 가족친지들 앞에 언제나 이중 삼중의 연기를 하는, 그런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아마 그럴 날은 오지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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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12/05/07 17:41추락
오래두고 읽을 책이 하나 더 생겼다.
*
한때는, 반영론적 관점에서만 문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질과 의식, 토대와 상부구조, 작품은 시대의 산물이다, 작가는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등등. 이런 입장에서 보았을 때: 『죄와 벌』은 19세기 중반 시대상황, 야망은 넘치지만 무능력한 러시아 인텔리겐치아의 불만/불안에 대해 알아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님의 침묵>은 3.1운동의 패배에서 기인한 저항시로, 님=조국의 독립, 날카로운 첫 키스=3.1운동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상실의 시대』는 전공투의 ‘거짓말 같은’ 패배로, 『1984』은 스탈린주의/기형적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적 가치가 몰락하는 1920년대를 바탕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것이 작품을 진정으로 올바르게 대하는 것이고, 한발 더 나아가, 그렇게 읽힐 수 있는 작품이야말로 훌륭하다 할 수 있다, 고 생각했다.
요즘에는, 글쎄, 요 몇 년 나의 독서를 놓고 보았을 때, 물론 반영론적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효용론에 더 입각해 있는 것 같다. 라스콜리니코프는 19세기 러시아에서만 유효한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님의 침묵>에서 님은 정말 님일 수도, 키스가 정말 키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학을 통해 느낄 수 것은 그것을 잉태한 시대의 향기보다 내가 자리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지배적으로 자리 잡았다. 문학은 결코 몇 마디 문장과 도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다, 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알면 알수록 알게 되는 건 알 수 없다는 사실은 여기에도 적용된다.
**
하지만 간혹 어떤 소설들은 시공간적/역사적 배경이 그것을 이해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할 때가 있다. 가령, 『태백산맥』과 같은 역사소설들, 스탕달의 『적과 흑』이나 오웰의 『동물농장』 같은 작품들. 최근 한국문학 중에는 『도가니』나 김연수의 『원더보이』 같은 일종의 정치소설들이 그 경우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존 쿳시라는 지적인 작가가 지은 『추락』도 바로 이런 소설 중 하나다. 아파르트헤이트가 형식적으로 청산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시공간적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충분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소설의 진미를 제대로 맛보는데 한계가 있는 작품이다. 책을 다 읽고, 부족한 정보를 찾다가 발견한 리뷰 하나. 최근에 본 문학리뷰 중에 제일 괜찮다. 링크
리뷰를 보고 나서야 주인공들의 입장과 선택, 결과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왜 루리는 유죄를 인정하고 자신을 ‘변호’하려 하지 않는지, 왜 루시는 개인의 치욕을 역사를 통해 해석하려 하는지, 왜 그들은 끝내 ‘단념’하고 마는지를 말이다.
“아버지가 그 문제를 다시 꺼내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면, 말씀드릴게요. 그 이유는 제게 일어난 일은 순전히 저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다른 때, 다른 곳에서는 공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곳, 이 시점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그것은 제 일이에요. 전적으로 제 일이에요.”
“이곳이 어때서?”
“이곳이 남아프리카이기 때문에 그래요.”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나는 네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너는 너한테 일어난 일을 순순히 받아들임으로써 에팅거와 같은 농부들로부터 거리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는 여기에서 일어난 일이 하나의 시험이라고 생각하니? 만약 이걸 통과하면, 너는 미래를 위한 자격증과 안전한 행동지침이라도 받을 것 같니? 아니면 재앙이 너를 지나쳐 가도록 문 위에 페인트로 쓸 무슨 신호라도 받은 것 같니? 루시, 복수는 그런 식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복수는 불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집어삼키면 집어삼킬수록 더 굶주려 하는 법이다.”
(pp.169-170)
***
물론, 역사적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라 하더라도 이 소설은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일단 술술 읽힌다. 한 번 펴면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다. 짧은 문장과 부딪히는 대화가 자아내는 가쁜 호흡을 독자들도 따라가게 된다. 물론 그 안에 담긴 답답함도 함께 말이다. 대화는 공전하고, 사건은 극적인 설정(교수―제자―추문/레즈비언―강간―임신)으로 인해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그 충격적 사건의 원만한/합리적인 해결을 기대하는 독자들을 소설은 막바지로 갈수록 당황스럽게 만든다. 끝내 이해되지 않는 미스테리물처럼.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는 교수가 대화의 가능성을 불신하고 딸과의 소통에 실패하듯 독자들 역시 루리와 루시의 선택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로서는 그 사람 역시 이해할 수 없다).
“난 당신이 이 개를 한 주 더 살려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개를 단념하시는 건가요.”
“그렇소, 단념하는 거요.”
(p.331)
결국 남는 건 단념. 신기하게도, 이 충격적 사건의 이해되지 않는 결말을 나를 비롯한 독자들은 ‘단념’이라는 정서로 온전히 받아드리게 된다. 왜일까.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살지 않아도, 그 상황과 실정에 꼭 맞는 ‘추락’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우리 각자는 나름의 비슷한 경험을 삶에서 겪기 때문일까. 자신의 처지를 역사를 통해 합리화하고, 수긍하는 것이 그리 특수하지만은 않은 일이기 때문일까. 역사적 화해의 어려움을, 순조로운 교체와 이행이라는 낭만적 주문의 불가능성을 너무 잘 알아서일까.
다이나믹하기로는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땅에 나서 자란 나 역시 이 ‘단념’의 결말을 가혹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인다. 무력하고 수동적이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 한 때는 이런 정서야 말로 삶에 대한 기만이고 역사의 질곡이라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단념 역시 온당한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확실히 나이를 먹으면 사람이 바뀌나 보다. 좋게 말하자면 이제야 제대로 철이 드는 걸지도.
****
마지막으로, 소설에는 루리 교수와 딸 루시의 추락 외에 바이런―테레사의 이야기가 주요하게 나온다. 아마도 이 이야기 역시 소설의 주제에 밀접한 연관이 있는 듯한데, 바이엘은 알아도 바이런은 모르는 공학도인 나로서는 너무 어려운 이야기. 이건 이 책을 다시 읽고 난 후에 다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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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12/05/07 11:44여행기를 소설로 읽기
지하철에서 읽다가 미친놈처럼 키득거렸다. 그만큼 웃긴 책이다. 특히 곰! 이제 책 표지의 곰만 봐도 웃긴다.
*
책을 읽고 주변에 간단히 산보할 수 있는 코스를 찾게 되었다. 무슨무슨 둘레길이 근처에 여기저기 있더구만. 주말에 두세 시간 산행으로 운동부족을 해소해야겠다. 이 책이 내게 준 실제적 효용 하나.
**
『나를 부르는 숲』은 여러모로 ‘허약한’ 두 친구가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하며 벌이는 일종의 여행기로 읽어도 재미있지만(당연히 이게 합당하지만), 김영하의 주장처럼, 책에 등장하는 스티븐 카츠를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로 상정하고 읽으면 더욱 흥미롭다. 그 순간 이 책은 여행에세이에서 소설로 분류이동 한다. 여행기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소설의 단순한 구조로 해석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일종의 맥거핀(macguffin)이고, 브라이슨과 카츠는 두 명의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진 인물들이 아니라 한 존재의 양면 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중자아라 볼 수 있다. 여행을 결심하고, 여행을 통해 떠나온 곳과 떠나갈 곳에 대해 생각하고, 무엇보다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그리고 여행의 결과로 스스로 한 단계 성장하는……. 여기에서 여행을 어떤 사건으로 대치시키면 이게 바로 지극히 일반적인 소설의 구조이나 내용이 아닌가.
***
출판사 제공 책소개에서 이 책을 두고 “브라이슨의 매혹적인 이야기는 마지막 남은 위대한 자연을 보존해야 한다는 감동적인 호소”라고 이야기하는데, 글쎄, 그건 좀 제한적인 이야기인 것 같고, 뭐랄까, 이 책은 자연보다 인간/환경보호라는 외향적 슬로건보다 성숙과 발전이라는 내향적 테마에 더 가까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책의 마지막 부분. 브라이슨과 카츠가 트레일 종주 도중 서로 길을 잃고 방황하다 다시 만난 후 종주 중단을 결심하는 장면에서, 그리고 비록 완주에 실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자신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평하는 대목에서, 지금 이 순간 어려운 여정을 걷고 있는, 혹은 앞으로 걸어야 하는 우리들은 스스로의 삶을 각자 짚어볼 수 있지 않았을까. 과거 중도반단한 일에 대해 이제는 안정을 찾고 겸허히 평가하는 마음으로 술회할 수 있지 않았을까.
p.s.
투덜거림에도 위트가 있어야 한다. 이게 이 책이 내게 준 실제적 효용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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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12/04/30 11:58자신감과 위안
김훈의 『남한산성』을 다시 읽었다.
하드보일드한 문체, 혼잡스레 섞이는 말들이 자아내는 혼란, 기승전결의 탁월한 구성, 계절적 변화의 사건에의 연결, 날쇠라는 허구적 인물이 나타내는 상징적 효과, 무엇보다 역사적 사실이 배경이기에 피할 수 없는 구속력과 진중함. 잘쓴 소설이다. 소설의 내용이나 작가의 창작의도는 친절한 김훈씨가 서문에 남겨놓았으니 링크(링크)
처음 읽었을 때도 느낀 바지만, 참 나쁜 소설이다. 삶에 자신감이 사라진다. 허나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위안을 받는다. 누가 뭐래도 삶은 어려운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두를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인조도, 최명길도, 김상헌도, 서날쇠도, 무엇보다 김류도. 난데없고 유례없는 일을 처음 맞닥뜨렸을 그들에 대해 연민이 생겼다. 어찌할 수 없는 일에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맡은 역할에 적절히 연기(演技)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비단 ‘남한산성’에서만의 일로 그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삶은 일회성이다. 현재는 미답의 길로 눈앞에 있다. 하여 우리는 당면한 일 앞에 모두 똑같이 어렵고, 힘들며, 무력하다. 삶에 자신감이 사라지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러면서도 위안을 받는다는 말도 바로 이 때문이다.
참 적절한 타이밍에 이 책을 볼 수 있었다. 이 여운은 오래 지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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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12/04/24 09:41당면한 삶의 자리에서
김훈의 『흑산』을 읽었다.
*
소설은 조선 후기 천주교도들에 행해진 박해를 소재로 한다. 성리학의 원리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조선에서 천주를 받아드린 사람들. 그들의 수효는 적었으나 뜻은 위험했다. 뜻이 위험한 만큼 벌도 엄했고, 수가 적어 완전히 도려낸다 한들 문제될 게 없었다. 조선의 천주교는 비선의 점조직이었기에 수사는 잡힌 이들의 입에 의지했다. 입에서 입으로 죽음이 풍문처럼 옮아갔다. 가혹한 매질에도 끝내 주를 버리지 않은 이들은 죽음으로서 영생을 얻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배반으로 살아난 이들은 삶을 되찾았다. “누구도 삶을 단념할 수는 없”었다.
『흑산』에서 주를 이루는 것은 황사영과 정약전의 대비이다. 창작의 배경과 동기, 목적을 친절하게 작가후기로 남겨놓는 김훈은 말한다.
나는 흑산에 유배되어서 물고기를 들여다보다가 죽은 유자儒者의 삶과 꿈, 희망과 좌절을 생각했다. 그 바다의 넓이와 거리가 내 생각을 가로막았고 나는 그 격절의 벽에 내 말들을 쏘아댔다. 새로운 삶을 증언하면서 죽임을 당한 자들이나 돌아서서 현세의 자리로 돌아온 자들이나, 누구도 삶을 단념할 수는 없다.
유배지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흑산에서 정약전은 후학을 받고, 여인을 품고, 자식을 얻고, 책을 펴낸다. 세상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돌아갈 곳은 없고, 그리워할 이는 있으나 마주할 수는 없어 정약전은 술이 는다. 이렇게 지속되는 삶에 어떤 목적과 의미가 있을까. 가고자하는 방향이 없을 때 길은, 마노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 자체로 목적과 의미로 된다. 아마, 삶도 마찬가지일 테다.
금기의 천주를 모시지 않더라도 당대 민초들의 고생은 매한가지였다. 맞아죽는 일과 굶어죽는 일이 동시에 두렵듯 사학죄인으로 쫒기나 관리들의 학정에 뜯기나 고난은 차이가 없었다. 황사영과 정약전의 대비와 별개로 『흑산』에 등장하는 여러 민초들은 천주의 교리를 각자의 고단한 삶의 이력 안으로 자연스럽게 합해버린다. 길에서 길이 이어지듯, 두물머리에서 두 물이 합쳐 흐르듯.
작가는 그들의 개명(開明)을 축복하지 않는다. 천주를 믿음으로서 죽음의 형태가 달라졌을 뿐, 애당초 삶이 고난이었기에 역시 애써 그들의 죽음을 위로하지도 않는다. 시대와 처지 앞에 붙들려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라면 삶은 원래 그러해야하는 자리에서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마부도, 중인도, 어부도, 노비도, 학자도, 대비도 '현재'와 '여기'라는 시공간의 좌표에 고정된 인간에 불과하므로 그들은 미혹하고 무력하다. 그들은 그렇게 태어났고, 그렇게 살 것이고, 그렇게 죽을 것이다.
순매의 몸을 안으면서, 정약전은 끌려온 곳에서 살 수밖에 없음을 알았다. 당면한 곳만이 삶의 자리라고, 질퍽거리는 순매의 몸이 말하고 있었다. (p.302)
**
확실히 나이가 들면 염세적이 되는 걸까. 예전에는 부정하고 싶었던 ‘김훈’식 사고에 이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남한산성』에서 느꼈던 무력감이 『흑산』을 통해 되살아난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미래의 법정에서 언제나 유죄로 되는 현재에 사는 내가, 알면 알수록 알게 되는 것은 모른다는 사실 뿐인 지금의 내가, 그저 살아가는 일 외에, 과연, 무엇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흑산』을 읽고 나서 『남한산성』을 보고 있다.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똑같이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삼았지만 주제의 뉘앙스에서 차이가 난다. 글의 스타일은 비슷비슷하지만 구조는 전혀 다르다. 내 경우, 끊임없는 말들의 섞임이 자아내는 혼란과 한겨울 삭풍처럼 날 선 문장―글의 형식 자체가 내용이 되어버리는 『남한산성』이 더 마음에 든다. 『남한산성』은 10페이지만 읽어도 내가 지금 대단한 걸 읽고 있다는 생각을 먹게 한다. 확실히 대단한 소설이다. 다 읽은 후에는 『내 젊은 날의 숲』을 읽어야겠다. 읽다 덮었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남한산성』―『공무도하』―『흑산』 사이에 낀 이물질처럼 느껴진다. 완독하고 판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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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12/04/18 11:15마음이 울렸다. 늙었나 보다.
올리브 키터리지
- 저자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 출판사
- 문학동네 | 2010-05-06 출간
- 카테고리
- 소설
- 책소개
- 올리브, 오늘은 무슨 일이지요?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아트 세덴바움...
*
퇴근길 버스에서 김영하의 목소리로 이 소설집 맨 앞에 실린 「약국」을 들었다. 한 중년남자가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보다 훨씬 젊은 여인에게 품었던 애틋한 감정을 고백조로 풀어내는 이야기. 부정(父情)과 동정, (이제는 사라져만 가는 가치에 대한) 향수와 이성으로서의 마음이 한데 뒤섞인, 이 복잡한 감정은 과연 사랑이려나. 한 시간 남짓, 소란스러운 버스에서 소설을 들으며 꽤나 마음이 울렸다. 예전 같으면 분명 지루하게 느껴 그렇게 오래 듣지도 않았겠지. 확실히 요 몇 년 새 부쩍 늙어버린 느낌이다.
**
『올리브 키터리지』는 매력적인 소설집이다. 누군가의 비평처럼 "한 인물을 택하여 그가 속한 커뮤니티를 통해 인물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발상이 뛰어나다." 잔잔한 일상과 그에 대비되는 비일상적 충격이 만들어내는 긴장은 소설을 지배한다. 무엇보다, 13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너무 생생하고 매혹적이다. 그들이 겪는 불행과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13편 모두 비슷비슷한 전개로 이루어지는 점, 부러 딴죽 올리듯 이야기를 지연시키는 작가의 서술 등은 확실히 읽는 맛을 떨어트린다. 13개나 썼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어쩌면 그냥 연작소설집이 아니라 「약국」, 「불안」 요렇게 낱낱의 단편으로 읽었을 때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매우 인간적인 작품. 외로움과 상실이 매 페이지마다 배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트라우트는 부드러운 유머와 자양분 넘치는 희망의 약을 함께 건넨다.
―북리스트 (미국도서관협회)
그래도 『올리브 키터리지』는 400페이지가 훨씬 넘는 분량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 분명 매력적인 작품이다. 매 이야기가 전하는 삶의 뼈아픈 진실들은 가슴 속에 잔잔한 파문을 남긴다. 삶의 뼈아픈 진실이라……. 거칠게 말하자면 이렇다.
①트라우마는 끝내 극복되지 않는다. ②일상에 검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갑작스런 불행과 그에 대한 공포,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외부에 있지 않다. ③이해되지 않는 관계 속에서 그래도 서로 이해하며 살아야하는 것이 인생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새겨진 삶의 흔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엄마(올리브)와 아들(크리스토프)는 끝내 화해하지 못한다(「불안」). 갑작스러운 사고가 진정한 불행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일상 속에 감춰졌던 관계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여행 바구니」, 「다른 길」). 그러나 그 관계가 아무리 실망스럽고 허무하게 느껴지더라도 우리는 결코 혼자 살 수 없으며 누군가를 위로하고 또 누군가에게 위로받아야만 한다(「굶주림」, 「강」).
어쩌면 단순하고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이런 이야기들이 이 소설을 통해 꽤나 깊숙이 가슴에 밝히는 건 그만큼 작가가 능력이 있어서겠지. 퓰리처상 수상작이라는데, 그걸 대단하게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확실히 이 책은 읽는 동안 내용과는 별개로 그냥 ‘잘 쓴 소설’이라는 생각을 먹게 만든다. 이야기의 결말과 내용보다 그 분위기에 취해 읽은 소설은 『남한산성』 이후 꽤나 오랜만인 것 같다.
이 소설의 힘은 바로 그 점이다. 가슴을 후벼 파는 듯 예리하게 와 닿는 문장으로 독자의 정서에 진하게 호소하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배우자와의 관계, 갈등과 상처와 애정, 어느 하나 내 일 같지 않은 장면이 없다.
―역자후기 중
***
첨언. 이상하게 읽는 내내 ‘9.11테러’가 떠올랐다. 총기사고, 원한살해, 인질강도 등 소설에 등장하는 비일상적 사건사고들. 그리고 그로 기인되는 일상의 변화 또는 환기를 생각해볼 때 어쩌면 이 소설의 출발점은 9.11테러가 아닐까 하는 생각. 그래서일까,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정이현의 「삼풍백화점」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또 하나는, 더 이상하게도, 소설을 읽는 내내 <브로콜리 너마저>를 듣는 느낌이었다. 잔잔한데, 확실히 잔잔한데 평온하지 않다. 투명한 유리잔에 미세한 금을 발견할 때처럼 불안한 심정. 깨질 것이 분명한데 미련하게 외면하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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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12/04/09 16:09너의 의미
남자는 그 여자와 사랑에 빠졌지만 왜 하필 그 여자인지 끝내 납득하지 못했다. 왜 하필 너지? 누구에게도 소개할 수 없고 못생겼고 정말 형편없는 너, 그런데 왜 너의 매력은 시들지 않지? 그리고 너로 인한 이 고통은 왜 이토록 오래 지속되는 거지? 출판사 편집장을 괴롭힌 건 바로 그 문제였다. (p.184)
요컨대 데이지는 인간 개츠비가 아니라 영국제 셔츠를 사랑하는 여자다. 개츠비도 그것을 알고 있지만 어쩔 수가 없다. 사랑할 가치가 없는 여자를 지독하게 사랑한다는 것, 아니, 그 여자를 지독하게 사랑하는 자기 자신의 이미지를 사랑한다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 <위대한 개츠비>는 상투적 로맨스의 무덤에서 부활해 하늘로 승천한다. 개츠비의 '위대함'은 그가 인류에 공헌했다거나, 뭔가 엄청난 업적을 쌓았기 때문에 붙은 수식이 아니다. 그는 무가치한 존재를 무모하게 사랑하고 그러면서도 의연하게 그것의 실패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여전히 자신의 상상 속에 머문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위대하다. 따라서 그 위대함에는 씁쓸한 아이러니가 있으며 불가피한 자조의 기운이 스며 있다.
그렇다면 나 역시 나의 이미지를 사랑하는 것일까. 나의 꿈에도 씁쓸한 아이러니가 있으며 불가피한 자조의 기운이 스며 있는가. 글쎄, 100% 동의하기는 힘들다. 나의 경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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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12/04/04 17:20그림자를 판 사나이
데자뷰. 옛날에도 이런 순간들이 있었다. 미경은 찾아와 울고, 들어보면 바오로 얘기였다. 바오로가 찾아와 우는 때도 있었는데 들어보면 미경 얘기였다. 그들은 털어놓아야 할 뭔가가 있었다.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나에겐 누군가의 영혼에 어둠을 드리울 그 무언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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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12/03/11 02:11문제는 남는 씁쓸함
자유의 대가로서 고독을 지불해야 하듯 이곳은 ‘기브 앤 테이크’의 계약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네트워크니까 말이다.(p.34)
이제 그네들끼리 해결한 문제가 남아 있을 터였다. 타인들의 삶이었다. 나는 조용하게 발길을 돌렸다.(p.91)
****
마지막은「삼풍백화점」에 있는, 내가 정이현의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
마음과 마음 사이 알맞은 거리를 측정하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내겐 몹시 어렵기만 하다.(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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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12/03/06 21:34기다리던 거랑 다른 게 왔다
*
같은 소설가가 쓴 것이라도 단편과 장편은 그 맛이 다르다. 김영하의 경우는 특히나 그렇다. 그가 쓴 단편소설은 하나같이 UFO처럼 신기한 것들로 이야기 그 자체가 매력적이다. 그걸 풀어내는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반면, 장편소설의 경우 책의 두께만큼이나 묵직한 화두가 인상적이다. 읽은 후 한참이 지나도 김영하가 만들어낸 세계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 그 안을 맴돌며 의미를 곱씹게 된다.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저 구름 위로 올라간 마술사가 어디로 갔을지 궁금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의 조수를, 마술사가 사라진 뒤 내시의 피로 흥건했을 현장에 홀로 남겨졌을 소년은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한다.(p.9)
너희들은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들로 인해 아프다.(p.1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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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12/02/29 00:11불쌍타, 찰스
진보의 드라마는 거대하고, 계몽적이고, 자신에 차 있고 스스로 만족하며, 무엇보다도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드라마였다.―에릭 홉스봄, 『자본의 시대』
그러므로 『프랑스 중위의 여자』가 이 소설의 제목인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사라 우드러프. 이 인물이 곧 이 소설인 셈이다. 그녀는 19세기라는 시대가 가지고 있는 관습적 도덕률과 곧 다가올 20세기의 해체적 양상을 동시에 내장하고 있는 인물이며, 따라서 그녀를 통해 소멸해가는 19세기적 도덕률과 다가올 20세기의 사상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김영하, 『포스트 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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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12/02/19 02:29노골적이다, 노골적이야
내가 이 소설의 진가를 제대로 못 본걸까. 뭐, 그래도 어쩔 수 없고. 어쨌든 마무리는 연수 형의 바람대로 다시 한 번 '우리의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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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12/02/14 22:24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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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12/02/13 13:01what, how, when, 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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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12/02/03 21:34위기의 증거
이상문학상단편집은 나오는 작가가 거의 정해져있죠. 안보고도 예상가능;; 장편 신인 뽑는 문학상 수상작보면 처참한 수준..; 뽑는 심사위원 수준까지 의심하게 만드는데 얼마나 없었으면 싶을 정도인 것도 있더군요. 태생 한국인도 공감못하는데 번역되서 팔려나가는건 언감생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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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12/02/01 13:11김영하, 구보 씨, 그리고 카프카?
덧붙여서, 소설가가 아니더라도 옥수수가 되기는 쉬울터. 나도 필요한가, "나는 옥수수가 아니다"라는 주문이. 그런데, 세상이 요지경이라 아무리 주문을 외더라도 효과가 없다. 그게 이 단편소설을더 서글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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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12/01/15 03:27어쩌면 지금 이 모습이 최선의 결과일지도
후자가 낫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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