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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2/02/20 13:24

내가 지금 굉장한 걸 보고 있다!



스틸 라이프 (2007)

Still Life 
8
감독
지아 장커
출연
자오 타오, 한 산밍, 왕굉위, 황용
정보
드라마 | 중국, 홍콩 | 112 분 | 2007-06-14



문학이든 영화든 어떤 작품을 읽고 이것이 ‘좋은 것’임을 알아차리는 타이밍. 

①책을 다 읽고 덮을 때 혹은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와” 하는 감탄사가 나오는 경우. 예로는 『태백산맥』(“대장님, 우리는 아직 심이 남아 있구만요.”), <안개 속의 풍경>(나무, 그 나무) 등등. 
②처음 봤을 때는 별로네 싶다가 2~3년 지난 다음에 다시 읽었을 때 “아, 왜 내가 이걸 제대로 몰랐지?” 하는 경우. 10년 만에 다시 읽고서 한동안 일을 손에 잡지 못하고 멍해 있었던 『상실의 시대』나 <대부> 같은 걸작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③보면서 ‘내가 지금 굉장한 걸 보고 있다!’는 생각이 바로 드는 경우. 이 경우엔 감상과 동시에 전율이 찾아오는데 내 경우 계간지 창비에 실린 『꽃 같은 시절』 part 1을 읽었을 때나, 캄캄한 비디오방에서 <올드보이>의 오프닝을 봤을 때, 뭐 이정도가 있겠다.


주말에 <스틸 라이프>를 봤다. ③에 해당하는 놈이었다. 타이틀이 올라갈 때쯤부터 “요거 굉장한 놈인데?”라는 생각이 들더니 마지막 즈음엔 정성일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의 죽었다.” 최근에 본 영화들 중에서 최고다. 압도적 최고다. 보고나서 다시 한 번 영화를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영화에 대한 해설은 정성일과 지아장커의 대담(『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에 수록)에 거의 다 담겨 있다. 아래 인용은 모두 거기에서 Ctrl+C, Ctrl+V한 지아장커의 말.

그러니까 <삼협호인>의 영어 제목인 ‘Still Life’는 중국어로 ‘靜物人生’입니다(‘고요한 삶’이 아닙니다). 중국 사람들에게 담배, 술, 차, 사탕은 가장 중요한 네 가지입니다. 그 네 가지만 있으면 가정 생활이 행복해진다고 말합니다. 나는 이 네 가지 물질을 통해서 삶의 순간을 멈춰 세운 다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행복하십니까?


*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 하나.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인물들이 아니라 배경으로 나온 산샤라는 생각. 한쪽에서는 산수화 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그 밑으론 끊임없이 철거, 공사가 진행되고 건물이 들어서는 공간. 딱 봐도 현대 중국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이 산샤라는 공간을 지아장커라는 감독은 그야말로 환상적으로 다뤘다. 인물들이 프레임에서 사라져도 여전히 남는 이 풍경의 영상은 적막하지만 어떤 소리 높은 발언보다 정치적으로 느껴진다. 인물을 압도하는 공간! 그런데, 
보다 보니 그게 아니다. 점점 그 압도적 풍경보다 그 속에서 치열하게 노동하는 사람들이 가슴에 맺힌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돌 깨는 소리. 벗은 웃통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땀방울. 기계처럼 반복되는 망치질. 조그마한 체구, 순박한 외모의 노동자들. 영화 내내 내 가슴을 짓뭉개는 것은 절경 속에서 부서지고 세워지는 건물들이 아니라 그 속에 인간, 땀 흘리며 살아가는 인간이었다. 그게 사실 영화의 핵심이었다. 다음은 자이징커의 말.

나는 이 영화에서 (부서져 가는 도시의) 풍경보다도 노동하는 사람들의 몸, 그 몸에 흐르는 땀을 보았습니다. 예전에는 사회적인 자리에서 사람을 보았다면 이제는 나는 그것을 생명이라는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게 나의 가장 큰 변화입니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이런 사회는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사회에서도 살아가는 사람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통해서 인간의 존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생각 둘. 왠지 모르게 이 영화, <안개 속의 풍경>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전혀 다른 영화다. 롱테이크를 많이 사용했다는 점, 주인공들이 누군가를 찾아 헤맨다는 점, 축축한 습기가 화면을 넘어 전달된다는 점 등 비슷한 점은 많지만(생각해보니 많은데?) 그래도 <스틸 라이프>는 영화의 발언의 성격, 기초하고 있는 토대, 이야기의 구조가 전혀 다른 영화다. 하지만 보는 내내 <안개 속의 풍경>이 생각났다. 급기야 아래 장면을 볼 때는 ‘이건 혹시 오마쥬?’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니겠지만 말이다.



***

생각 셋. UFO, 건물로켓, 외줄타기. 이 CG들의 목적은 뭘까? 영화에서 세 번 뜬금없이 등장하는 이 초현실주의같은 장면들을 보고 ‘이게 뭐야’ 싶었다. ‘왜 흐름을 깨지?’ 이런 생각도 들었고.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반대로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과연 어느 게 더 초현실적인 일일까? 산수화 같은 자연 아래 끊임없이 철거와 건설이 진행되는 장소 vs UFO. 기계처럼 끊임없이 망치질하는 노동자 vs 건물로켓. 돈을 주고 산 아내/결혼했지만 다른 도시에 사는 부부 vs 고공외줄타기. 감히 전자보다 후자가 더 초현실적이라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두 주인공 중 한 명인 한산밍은 나의 이종사촌 형입니다. 그는 고향에서 실제로 광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플랫폼>과 <세계>에서도 광부로 나온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광산촌은 너무 힘들기 때문에 광부는 대부분 혼자 살고 있고, 그래서 돈을 주고 사는 수가 많습니다. 또 한 명의 주인공 셴홍은 남편을 찾으러 이곳에 찾아옵니다. 결혼했지만 서로 다른 도시에서 헤어져 살고 있는 부부들은 언젠가 결정을 해야 할 일과 마주칩니다. 지금 이런 일이 중국에서 매일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
<스틸 라이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이란 다큐영화도 같이 봐야한단다. <스틸 라이프>도 다큐feel이 강했는데 아예 다큐라니. 조만간 찾아 봐야겠다.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지아장커의 말 두 개.

예술가 혹은 지식인들은 사회가 자신들을 억압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엄살을 부리는 것입니다. 힘들어, 라고 말하지만 사실 현실의 무게 아래에서 그걸 다 들고 서서 버티며 진정 힘든 것은 노동자들입니다. 그들에게 현실은 험난하고, 그 현실을 떠받치고 현실에서 살아가는 것은 엄청난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민, 그들의 힘이 이 힘겨운 세상의 현실을 떠메고 온몸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중국에서는 질문을 바꾸어야 합니다. 중국에서 진행되는 근대화, 자본주의화, 세계화, 그 안에서 사람의 중요성은 점점 더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나는 나뿐만이 아니라 중국 영화가 중국을 찍기 위해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지금 시급합니다. <삼협호인>은 그것을 하소연하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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