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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12/02/21 13:26영화를 영화답게 읽기 위해서
정성일의 평론집을 읽고 난 후 부끄러운 고백. 나는 아직도 영화를 소설 읽듯이 보는 거 같다. 스토리라인을 중심으로 해서 줄거리에 집착하고, 영화의 표현방식보다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시대적 배경과 감독의 주장, 이야기 구조와 비유, 상징, 설정 등을 통해 좋은 영화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는 말이다. 사실, 이건 소설을 읽을 때랑 큰 차이가 없다. 좋은 영화와 좋은 소설의 차이는 내게 있어 불분명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일까. 나는 ‘카메라로 소설을 쓰는’ 이창동의 영화를 좋아한다. 물론, 이게 꼭 나쁘다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생각해도 이건 바람직한 영화보기는 아닌 것 같다.
영화는 문학이 아니다,라는 정성일의 이야기. 물론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다시 한 번 절절히 느낀 건 얼마 전 <스틸 라이프> 감상. 이건 정말 다른 문학의 표현으로 도저히 담을 수 없는 것을 영화라는 양식으로 토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대충이나마 주워들은 롱테이크와 트래킹, 팬 등이 와, 하는 감탄사와 함께 찾아왔다. 어떻게 이걸 한 번에 다 찍었지 하는 생각이 드는 몇몇 씬들. 그리고 그 씬들이 남긴 여운. 영상처럼 축축이 젖어드는 심정. 분명 문자라는 형식이 결코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무언가가 이 영화에 담겨있었다. 이게 바로 영화구나. 좀 더 나가자면, ‘영화는 문학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영화인의 희망이 느껴지는 심정이었다(물론 나는 영화인도 아니지만). 그리고 난 후 다시 한 번 영화를 제대로 공부해봐야겠다 마음먹고 영화보기 수련을 해야겠다고 생각, K군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대학원에 진학한 K군이 바쁘다고 ‘다음 기회에’라 하시네.
돌아보면 내가 ‘최고’라고 했던 영화들은 확실히 영화의 장점(혹은 종특)을 제대로 살린 영화들이었다. 가령 <봄날은 간다>. 은수와 상우가 서로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빠져드는 대목. 영화는 한 마디 대사도 없이 겨울 산사에 눈 내리는 소리,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로 그들의 감정을 보는 이에게 전달한다. 요걸 과연 문자라는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비슷하게 <대부 1>의 마지막 장면. 감정의 대립. 문 하나를 두고 나뉘는 세계. 이제는 다른 세계에 속한 마이클. 그를 외부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케이의 시선. 그 시선이 나의 것이 되고 조용히 닫히는 문. 문과 함께 닫히는 영화. 암전. 그리고 내 머릿속도 암전. 찾아오는 떨림. 전율. 요런 건 아무리 잘 쓴 것이라 해도 글로 읽었다면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하나 더 <안개 속의 풍경>. 무슨 마조히스트가 된 심정으로 소녀와 소년의 불행, 불운을 지켜보다가, 그야말로 느릿느릿하게 지켜보다가, 마지막 순간, 그 두 남매와 함께 지친 몸과 마음으로 국경을 넘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바로 그 때 안개가 걷히며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 그 때 터지는 듯 찾아오는 압도적 울림을 과연 영화가 아니라면 어느 예술에서 똑같이 느낄 수 있을 것인가. 이러니 내가 이 영화들을 좋아할 수밖에.
한편, 이창동. 내가 무지무지 좋아하는(반대로 정성일은 싫어하는 게 분명한) 이창동 영화들을 두고 생각해보면, 이건 영화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아니 영화가 아니라면 더 훌륭하게 작가가 하고 싶은 말들을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령 <밀양>. 마찬가지로 <시>. 비슷하게 <초록물고기>. 이 영화들에서 과연 이 것이 영상을 수단으로 했기에 가능한 성과는 무엇이었나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몇 장면 떠오르지 않는다. <시>에서 손자와의 베드민턴씬, <초록물고기>의 자동차유리씬 정도? (생각해보니 <초록물고기>는 빼야겠다. 요건 아니다.) <오아시스>는 위의 것들이랑은 다르다. 다만, 정성일의 말대로 다른 위험성을 가진 영화라 열외. <박하사탕>은, 요건 그냥 내가 별로여서 제외. 하여튼 이창동의 영화는 영화다운 맛은 확실히 없다. 그렇다고 별로냐면, 그건 아니다. 이건 영화라는 형식에 맞고 안 맞고의 범주에서 벗어나 생각해볼 문제다. 이창동의 ‘작품’은 어떠한 소설이나 영화들보다 삶의 근저에서 사람을 울리는 맛이 있다. 확실히 그렇다.
마무리하며. 정성일의 평론집을 다시 펼친 이유는 왕가위와 <스틸 라이프> 때문이었는데, 보다 보니 다른 이야기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장철의 무협영화에 바치는 피끓는 십대 소년의 막무가내 고백담>은 언제 봐도 사람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글이다. 문학/영화계에 대한 비판은 영화란 무엇이고 문학은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케 한다. (여기서 정성일은 음악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겠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건 음악의 문외한인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반면에 소설 대신 영화, 마찬가지로 소설 대신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정말 영화에 미친 사람이 미치도록 영화를 파고드는 이야기에 경외감이 든다. 대단하다. 글 어렵게 쓴다고 짜증냈었고, 너무 유식한 척 해서 무식한 나로서는 밥맛이었던 사람이지만 지금은 그런 티내기 마저 존경스러워 보인다. 앞으로도 많이 가르쳐주시라. 끝으로, 정성일 평론을 보고나면 항상 느끼는 거지만 오즈 야스지로와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를 봐야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든다. 이번 참에 봐야겠다. 카메라를 생각하면서, 선택을 생각하면서, 버린 것들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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